🌊 대홍수
호불호가 갈리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뻔한 신파 대신 SF적인 시도를 선택한 재난 영화.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홍수>는 처음부터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보기 전에는 “아, 또 재난 영화 하나 나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물이 차오르고, 도시가 잠기고,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도망가는 장면들이 반복되는, 그런 익숙한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작품은 단순한 재난 영화로만 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지점이 있더라고요.
분명히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고, 디테일과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 영화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재난 영화”라기보다,
SF적 감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분명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 호불호가 갈리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가 모든 관객에게 추천할 수 있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아요.
홍수라는 거대한 재난을 다루면서도, 장르적인 쾌감이나 긴박함을 끝까지 유지하지는 못합니다.
이야기의 구멍이 신경 쓰이는 분들에게는 분명히 “흐리다”, “설득력이 떨어진다”라는 말이 나올 만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좋았어요.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많은 영화들이 공식을 너무 잘 알고 있는 탓에, 감정도, 구조도, 결말도 너무 뻔하게 흘러가잖아요.
<대홍수>는 그런 의미에서 다소 거칠고 덜 다듬어진 부분이 있지만,
뻔한 신파 대신 SF적인 방향으로 틀을 잡으려 했다는 점이 저는 좋았습니다.
✦ 흔한 신파 대신 SF적인 상상력
재난 영화에서 많이 쓰는 방식은 정해져 있습니다.
가족애, 희생, 눈물, 마지막에 터지는 감정의 폭발 같은 것들이죠.
어떤 작품들은 그 공식을 잘 활용해서 훌륭한 감동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냥 “울어라”라고 강요하는 신파로 느껴질 때도 많아요.
<대홍수>는 그 길을 노골적으로 택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도 가족, 책임, 죄책감, 그리고 어떤 형태의 모성애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감정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리기보다는,
세계관과 설정을 통해 감정을 우회적으로 건드리려는 시도에 가까워요.
저는 이 지점이 좋았습니다. 만약 이 이야기를 전형적인 신파 구조로 끌고 갔다면, 아마 저는 “또 이런 식으로 가는구나” 하면서 중간에 빠져나왔을 것 같아요. 하지만 <대홍수>는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다른 방향으로 가보려 했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 디테일은 분명 부족하지만, 감정의 방향은 선명했다
이 영화의 약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설정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싶은 장면들이 있고,
현실적인 면에서 고개가 갸웃해지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어떤 인물의 행동은 충분히 쌓이지 않은 감정 위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콘셉트에 비해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평가에는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만약 치밀한 재난물, 논리적으로 빈틈이 거의 없는 세계관을 기대하신다면
분명 실망할 수 있는 작품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에 호감을 느낀 건,
감정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만큼은 분명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인물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놓치고 있어도,
마지막에 가서 어떤 감정에 도달하려 하는지가 느껴졌거든요.
✦ 재난보다 관심이 갔던 건 ‘사람들의 마음’
저는 영화를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 홍수 장면보다 사람들의 표정에 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물결이 도시를 삼키는 비주얼도 나름의 위압감이 있지만,
정말 마음을 흔든 건 인물들의 미세한 감정 변화였어요.
누군가는 자기 혼자 살기 위해 등을 돌리고,
누군가는 도망칠 기회가 있었는데도 끝내 누군가의 손을 붙잡습니다.
누군가는 살아남았다는 사실보다 누군가를 두고 왔다는 죄책감에 더 흔들리고요.
이 선택의 순간들이 너무 사람답게 느껴졌습니다.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는 회색 지대에서
각자가 자신만의 이유와 상처를 안고 선택을 내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거든요.
저는 이 지점에서 영화가 꽤 정직했다고 생각합니다.
✦ 모성애, 뻔했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남는 감정이었나
이 영화를 둘러싼 평가 중 하나는 “결국 또 모성애냐”라는 비판입니다.
한국 영화가 위기 상황에서 쉽게 끌어오는 감정 코드가 모성애인 것도 사실이고,
그게 때로는 피로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해합니다.
저도 처음엔 “아, 여기서 또 이 감정을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 모성애가 억지로 짜낸 눈물이라기보다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가장 먼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감정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어떤 분들에게는 여전히 “불순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영화가 모성애를 앞세워 모든 걸 덮으려 한다기보다는, 많은 감정들 중 하나로 그려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신파로 감정을 몰아붙였다기보다, 인물들이 결국 닿을 수밖에 없는 지점을 조용히 보여준 느낌에 가까웠어요.
✦ SF적인 상상력으로 감정을 우회하는 방식
<대홍수>가 흥미로운 이유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을 때가 더 좋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서사보다는 이미지와 상황, 세계관의 뼈대를 통해
관객이 감정을 “느끼게” 하려고 해요.
이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덜 친절하다”, “이해가 잘 안 된다”로 느껴질 수 있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지점으로 다가왔습니다.
SF적인 상상력으로 감정에 접근하려는 시도 자체가 반가웠거든요.
감정을 울리기 위해 대사를 길게 늘어놓는 대신, 상황이 사람을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마음을 흔들어 놓는 구성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실패한 부분이 분명히 있음에도, 도전 자체에 마음이 갔어요.
✦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 그리고 그럼에도 제가 좋았던 이유
정리해보면, 이 영화가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장르적으로 기대하는 재난물의 쾌감, 논리적인 설계, 촘촘한 디테일을 바라보는 관객에게는
분명 아쉬운 작품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실패한 재난영화”라고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장르 안에서 다른 길을 가보려다가 어딘가 어설프게 미끄러진 작품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저는 이런 어설픔에 정이 가더라고요.
안전하고 익숙한 선택 대신, 조금은 낯설고 불편한 선택을 한 영화.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자꾸 생각이 나는 영화.
<대홍수>는 저에게 그런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호불호는 갈리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뻔한 신파 대신 SF적인 시도로 감정을 건드리려 한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진짜 같았거든요.”
논리적으로 완벽한 재난영화를 찾고 계신다면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은 거칠고, 조금은 비어 있고,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대홍수>는 한 번쯤 선택해 볼 만한 작품이라고, 저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