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사 이한영〉 — 회귀가 ‘사이다’로 끝나지 않게 만드는 법
법정 드라마는 보통 ‘통쾌한 판결’로 감정을 정리해준다. 그런데 〈판사 이한영〉은 그 통쾌함을 주인공의 과거에서 꺼내온다. 한때 권력과 돈에 순응해 “시키는 대로 판결하던 판사”였던 이한영이, 10년 전으로 돌아와(회귀) 선택을 바꾸며 거대 악을 응징하는 이야기. 익숙한 설정인데도 이 작품이 눈에 띄는 건, 회귀를 ‘무적 치트키’로만 쓰지 않고 죄책감과 책임의 장치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1) 줄거리 — ‘머슴 판사’로 살던 남자가, 자기 인생의 판결문을 다시 쓰는 이야기
드라마의 출발점은 냉정하다. 이한영은 판사다. 하지만 정의의 대변자라기보다, 거대 로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머슴 판사’에 가깝다. 돈과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정리해주고, 피해자들의 사정은 서류 속 문장으로만 남긴다. 사회가 요구하는 ‘품위’와 ‘엘리트의 언어’로,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꺾어버리는 사람. 이 드라마는 그 비열함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반부터 이한영의 추락을 또렷하게 보여주며, “이 사람이 왜 회귀해야 했는가”를 납득시키는 쪽으로 간다.
중요한 건 회귀가 벌어진 뒤다. 이한영은 10년 전의 시점으로 돌아와, 같은 판을 다시 보게 된다. 이미 한 번 ‘나쁜 선택’을 해본 사람에게 과거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벌이다. 다시 만난 사건들, 다시 마주한 사람들, 다시 다가오는 유혹들 속에서 그는 묻는다. “나는 이번에도 같은 인간일까?”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전개는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라 관계의 재배치로 흘러간다. 과거엔 적이었던 인물이 이번엔 뜻밖의 협력자가 될 수 있고, 아군이라 믿었던 사람이 가장 먼저 등을 돌릴 수도 있다. 법정은 여전히 싸움의 중심이지만, 더 큰 전장은 법정 밖이다. 언론, 로펌, 사법부 내부 권력, 그리고 여론이라는 불특정 다수가 판결의 의미를 마음대로 재단한다. 이한영은 그 난전 속에서 ‘정의’를 외치는 대신, 정의를 작동시키는 방식을 바꾸려 한다. (여기서 드라마의 긴장감이 생긴다. 정의를 말하는 건 쉽지만, 정의를 실행하는 건 늘 누군가의 밥그릇을 건드리는 일이니까.)
2) 출연 인물 & 캐릭터 소개 — “정의”라는 단어를 각자 다르게 쓰는 사람들
● 이한영 (지성)
이한영의 매력은 ‘성인군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는 이미 한 번 타락했고, 그 기억을 가진 채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이 인물은 선한 선택을 할 때조차 속도가 빠르지 않다. 오히려 멈칫한다. 망설이고, 계산하고, 자기 비겁함을 다시 확인한다. 그런데 그 느린 순간들이 캐릭터를 살린다. 완벽한 정의의 얼굴이 아니라, 정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기 혐오까지 감당하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 매력 포인트 1: ‘회귀’가 주는 치트키보다, 과거의 죄가 남긴 그림자가 더 강하게 작동한다.
- 매력 포인트 2: 법정에서의 단호함과, 혼자 있을 때의 흔들림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 균열이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 강신진 (박희순)
권력형 빌런은 흔하다. 그런데 강신진은 “그냥 나쁜 놈”으로 처리되지 않아서 더 불쾌하고 더 무섭다. 그가 휘두르는 힘은 폭력이라기보다 시스템이다. 절차, 관행, 인맥, ‘원래 그렇게 돌아간다’는 말. 개인을 압박하는 방식이 매우 현실적이라서, 주인공이 통쾌하게 한 방 먹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한영과 강신진의 대립은 주먹싸움이 아니라 룰을 바꾸려는 사람 vs 룰을 독점한 사람의 전쟁처럼 보인다.
- 매력 포인트: 악역이 과잉 연출되지 않고, ‘일하는 권력자’로 그려질 때 생기는 현실 공포.
● 김진아 (원진아)
김진아는 ‘정의로운 검사’라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진실을 쫓는 이유는 단지 직업 윤리 때문이 아니라, 사적인 동기와 상처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캐릭터는 자칫 감정 과잉으로 흐르기 쉬운데, 〈판사 이한영〉은 김진아를 “분노를 무기처럼 쓰는 인물”로만 두지 않고, 사건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확신도 흔들리게 만든다. 이 흔들림이 이한영과의 관계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 매력 포인트: ‘정의의 언어’와 ‘복수의 언어’ 사이를 오가며, 시청자에게도 판단을 미루게 한다.
3) 캐릭터들의 매력 포인트 — 이 드라마가 “사람”을 놓치지 않는 순간들
이 작품이 좋은 건, 사건을 쳐내는 속도보다 사람을 남기는 방식이 더 신경 써져 있다는 점이다. 이한영은 회귀 후 ‘정의 구현’을 선택하지만, 드라마는 그 선택을 영웅 서사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에 내가 꺾어버린 누군가”를 다시 마주칠 때, 그의 얼굴이 변한다. 법적으로는 정리된 사건이, 윤리적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걸 계속 상기시키는 방식이다.
또한 주변 인물들은 단순히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각자 자기 논리가 있고, 그 논리가 때로는 더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시청자가 쉽게 편을 들지 못하게 만든다. “정의는 누구 편인가?”가 아니라 “정의는 어떻게 실행되는가?”로 질문을 옮겨 놓기 때문이다.
4) 연출적으로의 재미 — 회귀물의 속도감 + 법정물의 압박감을 붙이는 편집
〈판사 이한영〉의 연출 재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회귀물 특유의 속도감. 주인공은 이미 한 번 겪어본 미래를 바탕으로 ‘다음 수’를 읽는다. 이때 생기는 쾌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번에는 다르게 간다”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사건의 고리를 미리 끊어내며 전개를 앞당긴다.
둘째, 법정물 특유의 압박감.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의 무게, 그리고 법정 밖에서 밀려오는 여론과 권력의 파도. 특히 이한영이 ‘정의로운 선택’을 할수록, 그 선택을 무력화하려는 시스템의 반격이 더 노골적으로 붙는다. 이때 연출은 사이다 감정을 과도하게 뻥튀기하지 않고, “이겨도 끝이 아니다”라는 감각을 남긴다. (이 지점이 이 드라마를 단순한 통쾌물에서 한 단계 위로 올린다.)
또 하나의 재미는 인물의 표정과 정적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법정에서의 말싸움만으로 해결하지 않고, 판결 뒤의 침묵을 길게 끌어주면서 선택의 후유증을 시청자가 같이 견디게 한다. 회귀물이 보통 “다시 살면 다 잘될 것”처럼 보이기 쉬운데, 〈판사 이한영〉은 “다시 살아도, 결국 너는 너”라는 불편함을 남기는 편이다. 그래서 다음 회를 누르게 된다. 통쾌함보다, 그 불편함이 더 중독적이라서.
5) 총평 — 이 드라마를 추천하는 이유
〈판사 이한영〉은 법정 드라마의 쾌감(판결)과 회귀물의 쾌감(재시작)을 결합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조합이 단순히 ‘사이다 두 배’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주인공이 과거를 고치며 영웅이 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계속 심문하는 피고인처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태도가 드라마를 더 현실적으로, 더 잔인하게 만든다.
※ 작품 정보 및 설정 요약은 방송사 공식 소개/OTT 소개/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