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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 리뷰 (바디호러)

by producer92 2025. 9. 3.

🎬 서브스턴스(Substance) 리뷰|그녀는 자신을 되찾고 싶었을 뿐이었다

엘리자베스는 한때 ‘스타’였다.
화면 안에서 춤을 추고 땀을 흘리며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던,
누군가의 따라하고 싶은 몸이자, 그 자신이기도 했던 사람.
하지만 시간은 정직하다.
카메라는 나이 든 얼굴을 포착하고, 대중은 더 젊고 새로운 이름을 부른다.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밀려났다.’

그리고 그녀 앞에 한 가지 제안이 주어진다.
“당신을 더 아름답게, 더 젊게, 다시 무대 위에 올려드릴게요.”
USB를 통해 건네받은 실험적 약물, 서브스턴스.
이 약을 맞으면, 나의 DNA로 만들어진 ‘또 다른 나’가 7일간 함께 살게 된다.
조금 더 날씬하고, 젊고, 섹시하고, 말 잘 듣는 나.
문제는 그 ‘나’가 진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영화는 여기서부터 극단으로 치닫는다.
엘리자베스는 점점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그녀의 또 다른 자아 ‘수’는 카메라 앞, 사람들 속, 사랑의 대상이 된다.
그녀는 진짜였지만, 대체될 수 있는 진짜였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외친다.
“이건 내 삶이야. 내가 만든 몸이고, 내가 흘린 땀이야.”

하지만 영화는 묻는다.
“그걸 증명할 수 있나요?”
자신의 존재를 주장할 수 있는 건, 결국 얼마나 매력적인가, 얼마나 젊은가, 얼마나 보기 좋은가?
그 무대 위에서 목소리를 잃은 존재는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

🧠 감독 코랄리 파르자의 방식: 파괴가 아니라 증명

<서브스턴스>는 바디 호러다.
피가 튀고, 뼈가 부서지고, 피부가 찢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공포는 내장이 아니라 자아에서 온다.
‘진짜 나’를 증명하려는 욕망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차갑고 잔인한 화면으로 밀어붙인다.

그녀는 <레벤지(REVENGE)>로 이미 폭력과 여성의 욕망, 복수의 판타지를
뒤틀어 연출한 전적이 있다.
그 연장선에서 <서브스턴스>는 더 대담하다.
여성의 몸, 사회적 욕망, 노화에 대한 공포,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조차 삭제 가능한 이미지로 치부당하는 현대의 아이러니를
절대 감정에 기대지 않고, 압도적인 이미지 언어로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보다 냉정하고,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 나를 대신할 수 있는 나

‘나’를 대신한 ‘나’가 더 사랑받을 때,
‘진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 질문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사회가 원하는 나, 시장이 원하는 나, 연인이 원하는 나.
그 모든 타인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 안에서 또 하나의 나를 생산해낸다면,
나는 나를 소비하고, 해체하고, 결국 제거하게 된다.

<서브스턴스>는 단순히 “무섭다”로 끝나지 않는다.
이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사람의 절규다.
누군가에게 “나는 나야”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의 고백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섭고, 처연하고, 아름답다.

🧨 파괴의 끝에서 피어나는 자기 증명의 서사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거의 미친 듯한 몰입감이다.
파괴된 몸, 피로 번진 화장실, 바닥을 기어가는 한 여자의 손톱.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고통스럽게 반복된다.

영화는 결국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무너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무너짐 속에서 피어난 마지막 의지 하나 —
“내가 나라는 걸 기억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