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쥐(Thirst) 리뷰
박찬욱의 세계관 속에서 읽는 욕망과 신앙, 그리고 도덕의 붕괴 (스포일러 최소화)

<박쥐>는 흡혈귀 영화처럼 시작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면 장르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영화가 진짜로 보여주고 싶은 건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도덕을 믿던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무너지는가에 가깝습니다.
박찬욱의 영화는 늘 관객을 불편한 자리에 세웁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르치기보다, “이 상황에 놓이면 당신은 다를 수 있는가”를 묻는 쪽에 가깝죠. <박쥐>는 그 질문을 가장 노골적이고,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작품입니다.
신부 상현의 출발점
상현은 영화 초반까지 분명한 인물로 서 있습니다. 그는 신부이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으려 합니다. 자신이 아플 것을 알면서도 생체 실험에 참여하는 선택 역시, 타인의 고통을 대신 감당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이 시점의 상현은 도덕적으로 분명한 위치에 있습니다. 자기 욕망보다 신념이 앞서고, 육체보다 정신이 우위에 있는 인물이죠. 영화는 이 출발점을 굉장히 또렷하게 찍어 둡니다. 그래야 이후의 변화가 더 날카롭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한 번에 오지 않는다
상현에게 닥친 큰 사건은 한 번에 인생을 뒤집어놓는 전환점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짜로 흥미로운 건 그 이후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악해지지 않습니다.
피를 마시면서도 최대한 절제하려 하고, 누군가를 해치지 않으려 애쓰며, 자신의 상태를 죄처럼 받아들입니다. 문제는 이 절제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는 상현이 한 번에 선을 넘게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작은 선택을 반복하게 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번만 넘기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니까.”
이런 자기합리화가 쌓이면서, 상현이 지켜온 신앙과 도덕은 서서히 힘을 잃습니다. 타락은 폭발처럼 오지 않고, 생활처럼 찾아옵니다.
태주라는 존재가 드러내는 상현의 본질
태주는 단순한 ‘악녀’로 정리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녀는 억압된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태주는 잔혹하지만 솔직합니다. 반면 상현은 끝까지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규정하려 합니다. 이 둘의 대비가 영화의 핵심을 잡아줍니다.
태주는 욕망을 인정하고 행동하는 인물이고,
상현은 욕망을 부정하면서 행동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에서 더 위선적인 쪽은 상현입니다. 그는 신부라는 위치, 고통받아왔다는 과거, 선한 의도를 가졌다는 기억을 방패 삼아 자신의 선택을 계속 정당화합니다.
도덕은 신념만으로 유지되는가
<박쥐>는 도덕의 실체를 묻습니다. 도덕은 정말 인간을 지켜주는가, 아니면 조건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었는가.
상현은 육체의 고통이 사라진 순간부터 도덕을 지킬 이유를 점점 잃어갑니다. 벌이 즉각적으로 돌아오지 않고, 쾌락이 고통보다 앞서기 시작하자 신념은 빠르게 무너집니다.
이 영화의 잔인함은 여기 있습니다. 외부의 악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게 아니라, 편리해진 조건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클라이맥스에서 드러나는 진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상현은 더 이상 구원자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살릴 수도, 스스로를 구할 수도 없는 위치에 도달합니다.
중요한 건 이 파국이 강요된 결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상현은 계속 선택했고, 그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악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비극적입니다.
박찬욱의 세계관 안에서 본 <박쥐>
박찬욱 영화에서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합니다. 선과 악은 명확히 나뉘지 않고, 상황과 조건에 따라 쉽게 뒤바뀝니다.
<박쥐>는 그 세계관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보여줍니다.
- 신앙은 욕망을 없애지 못한다
- 도덕은 본능 위에 얹힌 얇은 막일 뿐이다
- 인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선을 넘는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관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당신이라면 끝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이 영화는 ‘흡혈귀’보다 ‘인간’을 본다
<박쥐>는 흡혈귀라는 설정을 빌렸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 실험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고통이 사라진 인간에게 도덕은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지,
벌이 늦춰진 세계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가는지.
영화는 이 가정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리고 결론은 냉정합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놀라울 만큼 조용합니다.
마무리
<박쥐>는 구원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구원이 왜 실패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도덕은 신념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취약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쾌하지만 정직하고, 과장된 설정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현실적입니다.
<박쥐>는 박찬욱 영화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가장 인간적인 작품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