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대표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Like Father, Like Son)>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6년 동안 키운 부모와, 병원에서 바뀐 친아들을 뒤늦게 알게 된 두 가정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 사회가 오래도록 지켜온 ‘혈연 중심 가족관’에 깊은 질문을 던지며, 진정한 가족의 정의가 무엇인지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관객은 화면 속 인물들의 갈등과 선택을 통해, 사랑과 책임, 그리고 시간의 무게에 대해 곱씹게 됩니다.
1. 두 아버지, 두 개의 가치관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아버지,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유다이(릴리 프랭키)가 있습니다. 료타는 대형 건설사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는 완벽주의자입니다. 그는 일과 가정 모두에서 효율과 성취를 중시하며, 아들을 키울 때도 규율과 질서를 우선합니다. 반면 유다이는 소박한 전자제품 수리점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함께 장난치고 웃는 시간에 가치를 두는 인물입니다.
병원에서 아이들이 뒤바뀌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 후,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드러내며 갈등에 휩싸입니다. 혈연이라는 생물학적 연결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함께한 세월과 추억을 택할 것인가 — 영화는 그 답을 강요하지 않고, 인물들이 스스로 흔들리고 고민하는 과정을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2. 아이들 — 선택의 대상이자, 감정의 거울
아이들은 단순히 어른들의 선택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료타와 자란 ‘케이타’는 조용하고 예의 바르지만, 친부모와 함께 지내며 조금씩 밝아집니다. 유다이 부부에게서 자란 ‘류세이’는 활발하고 자유로우나, 새로운 환경에서 불안과 혼란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들의 표정과 행동은 부모의 선택이 가져오는 심리적 파장과 상처를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특히 케이타가 사진 속 인물을 가만히 바라보거나, 류세이가 어색하게 손을 잡는 장면들은 ‘가족은 피보다 마음’이라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합니다. 감독은 아이들을 통해, 어른들이 미처 보지 못한 감정의 본질을 조용히 드러냅니다.
3.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연출과 상징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관찰자 시선’을 유지합니다. 카메라는 인물과 거리를 두며,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일상의 대화를 차분히 담아냅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마치 옆집 가족의 이야기를 몰래 지켜보는 듯한 몰입을 경험합니다.
영화 속에서 ‘사진’은 혈연과 추억이 교차하는 지점을, ‘손’은 물리적 접촉을 통한 관계의 회복과 온기를 상징합니다. 또한 도심의 고급 아파트와 시골의 소박한 주택을 대비시키는 미장센은 두 가정이 지닌 가치관과 생활방식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부각합니다. 여기에 절제된 음악과 생활 소음을 중심으로 한 사운드 디자인은 인물들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장면의 울림을 깊게 합니다.
4. 총평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닙니다. ‘무엇이 진정한 부모 자식 관계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은 일본 사회를 넘어 전 세계 관객에게 보편적으로 다가옵니다. 혈연의 끈보다 함께한 시간과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세대를 초월해 울림을 주며, 관객 스스로 자신의 가족 관계와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별점: ★★★★★ (5/5) — 부모와 자녀,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깊이 있는 휴먼드라마.